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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06 19:04

폐선廢船/ 강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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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선廢船

                                         강동수

 

 

 

바다와 맞닿는 길에

강줄기를 막고 누워있는 늙은 아버지

강물에 시린 발목을 담그고

물의 결을 깎아 나이테를 지운다

골반사이로 지나가는 강물과 바다사이에

배반할 수 있는 시간을 떠나보내는 아침

바다와 강물의 경계를 오가며

정체성을 잃어버린 갈매기들

먼지 쌓인 귓가에 파도소리를 내려놓는다

숲으로부터 걸어온

창백한 새들이 솟대 같은 정수리에 몸을 기대면

태초에 태어난 숲속으로 걸어가

키를 키우는 직립의 꿈

어둠은 밀물처럼 밀려와 숲을 덮는다

 

수시로 쳐들어와 소금기를 뿌려놓고 가는

해안가에서 조금씩 늙어가는 집

목쉰 바람이 불어와 집의 뿌리를 돌아 나가면

오래 기억되던 아궁이의 잔불과 새벽에 졸음을 내려놓고

불 밝히던 어머니의 부엌

항아리 속 묵은쌀을 한숨처럼 퍼 올리던

쌀되박의 기억은 망각의 바람을 따라 길을 떠난다

폐선처럼 허물어져가는 외딴집 감나무에

까치밥 하나 바람에 흔들리면

뿌리 따라 흔들리는 늑골의 아픔으로

다시 깨어나는 늙은 집

열리지 않는 아침을 가불하여 길을 나서던

아버지의 새벽기침소리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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