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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05 02:40

이정록 시인의 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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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 / 이정록 시 

[서울미디어뉴스]의 김상진 기자님이
<의자>라는 시를 따스하게 읽어주셨습니다.
꽃들이 의자에 앉아 오손도손 이야기할 때마다
봄향기가 퍼집니다.
우리도 오손도손 향기를 피워요. 함께 읽겠습니다.
의자/이정록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의자](문학과지성사, 2006)
[서평 talk]
이정록의 「의자」는 '의자'라는 아주 평범한 사물을 통해
삶과 관계의 본질을 따뜻하게 풀어내는 시다.
이 시에서 의자는 단순히 앉는 도구가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내어주는 자리이자 버텨주는 존재의 은유로 확장된다.
시의 시작은 일상의 한 장면이다.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가 툭 던지는 말. 그 말은 설명하지 않아도 삶을 오래 살아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짧지만 깊게 들어온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라는 구절은
몸의 고통에서 출발하지만, 곧 삶 전체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확장된다.
세상은 앉고 기대고 버틸 수 있는 자리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깨달음이다.
이 시의 따뜻함은 '의자'를 사람뿐 아니라
사물과 자연까지 확장시키는 데서 더욱 분명해진다.
꽃과 열매, 참외밭의 지푸라기, 호박을 받치는 똬리까지 모두가 '의자'가 된다.
여기서 의자는 누군가를 살게 하고, 자라게 하고, 쓰러지지 않게 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다. 그래서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라는 말은
단순한 농사 이야기를 넘어, 모든 존재를 향한 배려의 태도로 읽힌다.
중반부에서 시는 가족의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라는 말은 이 시의 핵심에 닿아 있다.
자식이 부모에게 '의자'였다는 표현은, 함께 버텨주고
기대게 해준 시간들을 함축한다. 사랑을
거창한 말로 설명하지 않으면서도, 가장 현실적인
언어로 관계의 깊이를 드러낸다.
마지막에 이르면 시는 삶의 정의로 나아간다.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이 구절은 이 시
전체를 관통하는 문장이다. 삶은 특별한 성취가 아니라,
누군가 쉴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는 일이라는 것.
그늘과 풍경은 삶의 조건이고, 의자는 그 안에서 서로를 버텨주는 관계다.
이정록의 「의자」는 삶을 거창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가장 사소한 사물 하나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서로를 지탱하며
살아가는지를 조용히 보여준다. 말은 담백하지만,
그 안에는 오래된 삶의 지혜와 따뜻한 시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시는 말한다.
삶이란
누군가를 위해 자리를 내어주고,
그 사람이 잠시라도 편히 앉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일이라고.(서울미디어뉴스 2026.3.31

시가 정겹고 읽을수록 우리들 시대 엄니를
생각나게 하는 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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