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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

매듭을 지어 마무리하다


 돌이켜보면 어머니는 수술실에 들어가시기 전에 두렵다거나 더 살고 싶다는 말은 한번도 꺼내지 않았다어머니께선 늘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너 같은 아들 만나서 고마웠다라고 말소리를 죽이며 소곤거렸다.

살다 보면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불안감에 휩싸일 때가 있다그때 우린 마음속에서 꼭꼭 숨겨둔 진심 어린 말을 필사적으로 건져 올리곤 한다왜일까내 짐작은 이렇다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물이 솟구치면서 마음 안쪽에 달라붙어 있던 진심까지 힘차게 밀어 올리는 게 아닐까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지막은 아버지와 어머니처럼 굳이 소리 내 발음하지 않아도 괜히 사람을 울컥하게 만드는 단어다인생은 유한하고 모든 일에 끝이 있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마지막에 이르러 이를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드물다삶의 끄트머리에 걸터앉는 순간 이제 끝이구나’ 하는 씁쓸한 체념과 함께 찡한 그리움이 밀려오고 그리움은 서서히 기억으로 옮아가기 시작한다.

삶이 끝이 있듯 글에는 결말結末이 있다맺은 ’ 실 사에 길할 길이 결합한 형태다그래서 결말은 실로 묶다’, ‘실로 매듭을 지어 마무리하다라는 뜻을 지닌다.

잘 매듭지은 결말은 그 문장만의 향기곧 문향文香을 남긴다.

문향은 쉽게 부스러져 흩날리지 않는다.

마음속으로 고스란히 배어든다.

그곳에 지지 않는 꽃이 된다.


자연스레 물음이 올라온다좋은 결말은 과연 어떤 결말인가내 대답은 글쎄올시다에 가깝다.

좋은 결말은 이러이러해야 합니다마무리는 이런 방법으로 작성하는 게 바람직해요라고 단언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게다가 나쁜 결말과 좋은 결말을 누가 무슨 기준과 근거로 판별할 수 있단 말인가.

그저 글쓴이 입장에서 마음에 드는 결말과 그렇지 않은 결말 혹은 덜 쓴 결말과 더 쓴 결말만이 존재할 뿐이다.

질문은 계속된다그래도 글을 마무리하는 나름의 요령은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이 역시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 아닐까 싶다.

보고서와 제안서 같은 비즈니스 문서는 회사의 언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따라서 세월의 흐름 속에서 수북히 쌓인 노하우를 바탕으로 문서의 끝부분을 동여매야 한다그래야 조직 내 의사소통 수단으로서 가치를 지닌다.

문서 작성이라는 영역을 뛰어넘으면 울타리 너머에 훨씬 드넓은 초원이 펼쳐진다글쓰기의 세계가 지닌 방대함과 복잡성을 하나로 꿸 수 있는 선명하고 단순한 원리가 과연 존재할지 의문이다.

오히려 글쓰기 책과 강좌에서 자주 언급되는 요령을 획일적으로 적용해 글을 종결하다 보면 자칫 똑같은 틀로 구운 빵처럼 비슷한 구조의 결말을 양산할 수도 있다.

훌륭한 마무리를 위한 표준 매뉴얼은 존재하지 않는다설령 오지랖이 넓은 어느 작가가 그런 지침을 만들어 삼천리 방방곡곡에 배포한다 해도 모든 장르에 통용될 리가 없다.


독서는 작가가 닦아놓은 활자의 길을 각자의 리듬으로 산책하는 일이다산책로를 걸으며 무엇을 보고 듣고 느낄지는 전적으로 독자의 몫이다다만 애초에 어떤 산책 경로를 구성하고 입구와 출구를 어떻게 꾸밀지는 작가의 선택과 취향에 달려 있다.

영어 단어 디자인design’은 윤곽을 잡다’, ‘계획하다’, ‘설계하다’ 등의 뜻을 지닌 라틴어 데시그나레designare’에서 유래했다모든 디자인에는 디자이너의 의도와 계획이 배어 있기 마련이다.

옷과 가구처럼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제품만 디자인을 거쳐야 하는 건 아니다글의 끝부분을 구상할 때도 나쁨의 의도를 가지고 각자의 방식으로 디자인을 입힐 필요가 있다고 본다.

난 막바지에 이르러 문장을 보태느냐아니면 덜어내느냐에 따라 결말의 디자인을 다르게 가져가는 편이다.

가장 선호하는 방식은 결말의 표면을 깎아서 벗겨내거나 호미로 굳은 땅을 긁듯 마지막 단락을 움푹 파내는 방법이다.

막판에 미주알고주알 설명하기보다 문장의 꼬리를 단칼에 잘라버림으로써 글에 적당히 갈라진 틈을 만들어 독자 스스로 자신의 사유와 삶을 재료 삼아 자유롭게 그 틈을 메우도록 돕는 것이다.


이와 달리 결미에 얇은 문장을 창호지처럼 덧발라가며완만한 내리막길을 내려가듯 천천히 글을 닫아야 할 때도 있다.

가령 사업 제안을 위해 작성하는 글은 본론에서 언급한 내용이라도 결말에서 한 번 더 강조하거나 짤막하게 요약할 필요가 있다제안의 목적과 개선 방안을 재차 환기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이런 유형의 갈무리는 본문의 흐름을 급격하게 틀지 않고 글이 자연스럽게 귀결되도록 유도할 때 자주 쓰인다.

다만 글이 종결되는 속도를 너무 늦추다 보면 쌀로 밥을 지을 수 있습니다” 같은 문장처럼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말을 반복하게 늘어놓게 되고결국 글의 끄트머리를 지저분하게 만드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뭐든 꼬리가 길면 밝히는 것뿐만이 아니라자칫 그 꼬리가 몸통을 짓밟거나 훼손할 가능성도 있다.


지난 1992년 미국 대선에선 당시 공화당 후보 조지 H. W. 부시 대통령과 민주당 후보 빌 클린턴 아칸소 주지사가 견원지간을 방불케 하는 난타전을 벌였다. ‘진흙탕 싸움의 승자는 클린턴이었다.

이듬해 백악관을 떠나면서 부시는 이걸 읽을 때쯤이면 당신은 대통령이 돼 있겠죠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편지는 책상에 올려놓았다.

미국 정가에서 패자의 품격을 보여준 사례로 두고두고 언급되는 이 편지에는 전임 대통령으로서 건네는 조언과 당부그리고 화해의 손길이 담겨 있었다.

앞으로 공정하지 않은 비판 때문에 힘든 시기를 겪을 수도 있겠지만 결코 낙담하거나 길을 벗어나지 않았으면 합니다당신의 성공이 곧 우리 나라의 성공이기 때문입니다당신을 응원하겠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은 시간 앞에서 언젠가 허물어지고 만다삶이 헐려서 무너진 자리에 가장 먼저 들어서는 건 마지막 순간에 대한 기억이다.

한 권의 책도 마찬가지다책을 덮는 순간 혹자는 눈앞에서 사라지지만마지막 페이지를 어루만질 때 떠올린 생각은 허공으로 날아가지 않고 독자의 머릿속에서 한동안 생을 이어간다글의 서두 못지않게 결말에 공을 들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기주, 『글의 품격』, 황소북스, 2019. (박수호 시 창작에서 공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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