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 7월호 신작시 1편ㆍ근작시 1편 선보였어요.
꽃의 내력 / 손현숙
꽃 한 송이 데리고 지하철 탔다 구두굽이 한 뼘인 여자가 슬며시 다가온다 이쁘다, 곱다, 얼마예요? 엷은 입술을 움직여 말을 거는 동안 여자의 귀고리가 반짝이면서 풍경처럼 흔들린다 나는 할 말을 잊고 여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한 송이에 오천 원, 딱 그만큼에서 거리 두는데 이 여자 서가의 사서처럼, 골목에서 오래 서성였던 사람처럼, 꽃 이파리 낱장마다 눈길을 준다 나는 괜히 미안해져서 이 꽃 드릴까요? 헛소리다 왼쪽 옆에선 엄마 품에 코를 박은 아기가 옹알이로 공기를 덥히고 꽃으로 몰려든 눈동자는 맥락 없이 적당히 서로를 저어가며 막 통한다 너나없이 꽃의 내력에 서로를 훤히 꿰는 눈치다 나는 그저 꽃 한 송이 더불어 지하철을 탔을 뿐인데, 웬일인지 아무도 낯설지 않았다 바람이 불고 여우볕 드는 날 집으로 가는 내내, 나는 지금까지 천지간의 한 부분을 너무 많이 돌아온 건 아닌가 하는 뜬금없는 생각에 시달렸다
시작메모:
아무것도 아닌 것들에 마음이 가는 요즈음이다. 사소한 것들에 눈길을 주면서 그것들에서 위로를 받는다. 크고 거대하면서도 거친 의미의 무엇들은 이미 내게서 떨어져 나갔다는 것을 몸이 먼저 눈치 챈 것일까. 꽃 한 송이 사들고 지하철을 탔는데 모르는 사람들에게 환대를 받았다. 어리둥절할 정도로 친절한 말씨로 말을 걸어주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진짜로 일어난 사건이었다. 맞다, 사건. 나는 왜 이토록 사소한 장면 앞에서 목이 메는 것이었을까.
ㅡ현대시. 2025.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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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날
손현숙
찬비 들숨으로 발목을 감는다 가을빛이 조금씩 짙어지더니 서리국화 멀미 속에 발자국은 흐리고 바람도 붉어져서 눈썹 그늘이 깊다
북사면 양지쪽에선 키 작은 가을꽃 무더기가 바람 부는 쪽으로 무너진다 누구도 상처받지 말기를, 11월의 그림자는 그림자로 지운다 투명한 것들은 너무 투명해서 뒷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어제는 북극성 옆에 달이 떴다 먼먼 눈빛으로나 스미면서, 달무리 너울로 한 반나절, 나는 11월의 달을 보며 도무지 모르겠던 당신을 알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2025. 유심 여름호
시작메모:
소리의 세상을 지우고 나면 그제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호흡을 통해 들고나는 생각
들. 어쩌면 그것들조차 모두 허상일 수 있겠지만, 숨을 따라 몸의 감각들을 깨우다 보면 색이 지워지면서, 가만히 보이는 무
채색의 황홀.그 가만한 세상속에서 부풀었다 가라앉는 무늬들. 나는 그것을 무어라 이름 지어 부르면 좋을까
나는 이 글이 참 느낌이들어 공유했다
가끔 시상이 안 올때 맘축이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