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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여행

입관入棺

                                                                         김강호

 

투명한 유리벽 안쪽 염장이 둘이 서서

망자 떠나보낼 의식을 치르고 있다

저음의 클래식 선율이

안개보다 가볍다

 

얼굴을 덮어놓고 목을 닦아 내려간다

견뎌온 생의 굴레 헛헛하고 가쁜 순간이

희디흰 수건에 닦여

눈꽃처럼 녹는다

 

자식들 웃음과 눈물 평생토록 피고 지던

따스했던 두 팔은 간이역이 되어있다

잠깐씩 쉬어가던 날들

기적소리로 남아있다

 

야무지게 움켜쥐었던 이승의 낱알들이

저렇듯 흔적 없이 손 밖으로 빠져나가고

단 한 올 삶의 보풀도

쥘 수 없는 시간이다

 

가슴팍 용솟음치며 터질 듯 끓어올랐던

활화산이 식었다 아스라한 빙벽이다

겹겹이 골짜기마다

메아리도 굳었다

 

등허리에 달라붙은 허기진 배를 본다

가난을 끌고 가다 멈춰 선 시루엣 길

조팝꽃 흰쌀밥이듯

봉으로 피운 곳

 

숨 가쁜 신음 소리 달콤하게 쏟아내며

애정을 불태우던 사타구니 언덕배기

젊은 날 탱탱하던 시간

쭈그렁 달려있다

 

버거운 날을 받치고 버팅기던 대퇴골

여든 해 비탈길을 간신히 넘어서서

곰삭은 작대기처럼

세월 베고 누웠다

 

얼마나 많은 비탈을 넘어온 무릎인가

산 같은 삶의 무게 온몸으로 짊어지고

쉼 없이 구부렸다 펴며

통증으로 샌 날

 

한 뼘 남짓 정강이를 가뭇없이 바라본다

차돌같이 단단했던 뚝심이 풀어지고

버티던 자존심마저

젓가락처럼 야위었다

 

뒤틀리고 옹이 박힌 발가락 닦아갈 때

협곡을 기어오르던 야크 같은 울음소리와

신작로 달리던 소리

뽀얗게 묻어나온다

 

손톱과 발톱을 조심스레 깎은 자리

어스름 밀어내며 초승달이 돋고 있다

곡소리 파도로 와서

자지러지는 한 굽이

 

까칠한 수염을 밀고 머리를 빗어주고

눈썹을 다듬더니 연분홍 분을 바른다

참 곱다 꿈을 꾸듯이

펴안해진 저 얼굴

 

살아생전 마련해둔 향기로운 수의 한 벌

샛노랗게 마른 알몸에 정성껏 입히고 있다

쪽빛이 출렁거리는

꽃버선도 신겼다

 

바쁘게 걸어온 길 둘둘 말아 묶는다

몸 가득 품고 살던 앙증맞은 꽃말까지

염포로 촘촘 묶는다

정갈한 꽃다발이다

 

관 속에 눕혀진 채 여행준비 끝냈다

상주들이 쏟은 눈물 가득히 차오를 때

세상의 문을 닫는다

망치소리가 어둡다

 

ㅡ나의 감상ㅡ

 

염하는 모습이 훤히 보인다

큰 슬픔을 마지막 한 다발 꽃으로

가쁜 숨을 쉬게 한다

이 세상 여행 끝나는 날 저 세상 여행 시작

마지막이지만 끝이 아닌 다시 여행이라고 했다

죽음은 끝이 아닌  

망자만 아는 다시 여행 길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나는 이 글을 읽으며 가슴이 철렁하였다

한 번도 나의 죽음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서

우연히 읽은 시 두 번째 여행  

여행만큼이나 긴 시를 옮겨 적고 있다

나도 모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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