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김옥순 시인 홈페이지

좋은 글

조회 수 55 추천 수 0 댓글 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가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가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경험을 낯설게 번역하기(쓰는 몸으로 살기)/김진해 
 
 게시글 본문내용
경험을 낯설게 번역하기

앞에서 ‘문체는 곧 그 사람이다’라고 했었죠. 이렇게 말하고 나니 글 쓰는데 부담감을 안겨주겠다 싶더군요. ‘글이 이렇게 진부하고 지지부진한 걸 보니, 내 삶도 이 모양 이 꼴인가?’라는 생각에 글쓰기가 싫어지고 자신감을 잃을지도 모르겠다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나의 한계를 들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글을 쓰지 말아야겠다!’

분명히, 문체는 글쓴이의 목소리이자 글쓴이 고유의 표현양식입니다. 글과 글쓴이의 삶을 닮았습니다. 이 진리의 말을 조금 바꿔 보자면, ‘글쓰기를 통해 사람이 만들어진다’는 겁니다. 고귀한 인격을 갖춘 사람이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글을 쓰다보면 고귀한 인격을 갖춘 사람으로 변모합니다. 글을 쓰다 보면 예의를 지키면서도 비굴하지 않은 자세, 단호하면서도 정중한 자세, 이기심보다는 이타심을 가지려는 자세,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현실 너머의 세계를 꿈꾸는 자세, 온갖 변수를 고려하면서도 길을 찾아내는 자세를 갖출 수 있습니다. 글을 쓰면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글 쓰는 용기를 잃지 마세요.
인격을 갖춘 글쓴이가 되기 위해 두 가지만 얘기해 보겠습니다. 하나는 번역한다는 자세, 다른 하나는 간결함의 추구.

‘My mother died’를 번역한다면
우리가 쓰는 글은 대부분 산문입니다. 넓은 의미로 수필(에세이)이라 할 수 있죠. ‘수필’을 정의할 때 늘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붓 가는 대로’, 또는 ‘생각나는 대로’, 기억나시죠? 떠오른 생각을 솔직 담백하게 쓰면 글이 된다고 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생각나는 걸 그대로 옮겨 쓰면 글이 될까요? 이 말이야말로 글쓰기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킵니다. 생각나는 대로 썼는데 글이 시원찮으니 좌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글쓰기의 인격이 서로 성장하는 걸 가로막습니다.

생각나는 대로 글을 쓰지 마세요. 생각과 글은 다릅니다. 물론 생각도 말로 이루어져 있어 이 둘을 엄격히 나누는 건 무리입니다. 하지만 일단 이 둘을 나눠놓고 봅시다. ‘생각’은 자고 일어났을 때 헝클어진 머리 같습니다. 한쪽은 눌려 있고 다른 쪽은 삐죽삐죽 뻗쳐 있죠. 부스스한 상태로 사람을 만나면 스스로 부끄럽거나 예의 없다고 핀잔을 듣기 십상입니다. 집 밖에 나가려면 머리를 감고 곱게 빗질해야 합니다.

‘글’은 생각을 있는 그대로 받아 적는 게 아닙니다. 글을 생각을 ‘번역’하는 겁니다. 생각은 가지런히 정돈되지 않고, 엉킨 실타래처럼 한 덩어리로 뭉쳐 있습니다.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사진과 비슷합니다. 한 장의 사진에 여러 사물이 동시에 찍혀 있듯이,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느낌이나 사건이 불쑥 솟아오르긴 하는데, 언어로 분화되지 않은 채로 있습니다. 그걸 글로 곱게 펼쳐야 합니다. 생각을 곧바로 쓰는 게 아니라, 생각을 글로 천천히 번역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보죠. ‘My mother died’를 번역하라면 어떻게 하시렵니까? 간단한 영어이지만 꽤 여러 문장이 떠오릅니다. 직역하면 ‘나의 어머니가 죽었다’고 할 수 있겠으나, 뭔가 어색하다. 언어마다 즐겨 표현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으니까요. 한국어로 ‘나의 어머니’보다는 ‘우리 어머니’가 자연스럽겠어요. ‘우리 어머니가 죽었다’가 될 텐데, 이것만 있지 않죠. ‘우리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 ‘우리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셨다’ ‘우리 어머니가 숨졌다’ ‘우리 어머니께서 숨을 거두셨다’ ‘우리 엄마가 세상을 등졌다’ 등등, 어이쿠, ‘모친께서 운명하셨다’도 가능하겠군요.
‘my’를 ‘나의’라 할지 ‘우리’라 할지, ‘mother’를 ‘엄마’라 할지 ‘어머니’라 할지, 어머니 다음에 올 조사를 ‘-께서’로 할지 ‘-가’로 할지 선택해야 합니다. ‘died’는 ‘죽었다, 돌아가셨다. 숨졌다, 숨을 거두셨다. 세상을 등졌다. 소천하셨다. 운명하셨다’ 등 선택할 후보가 많네요. 저라면 이렇게 번역할 것 같아요.

엄마가 죽었다

어떤가요? 버릇없고 싸늘해 보이나요?(여하튼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글쓴이의 ‘태도’ 즉 문체를 보여주는 건 분명하군요). ‘우리’란 말을 안 써도 돌아가신 분이 글쓴이의 어머니임을 알 수 있어 지웠습니다. ‘어머니’보다 ‘엄마’라고 쓰는 게 그분과 정서적으로 가깝다는 걸 보여주기도 하네요. 반면에 ‘-께서’보다는 ‘-가’를, ‘돌아가셨다’보다는 ‘죽었다’고 하는 게 독자에게 어머니의 죽음을 좀 더 객관적으로 전달하고 감정을 절제한다는 느낌을 줍니다. 피할 수 없는 죽음에 감정을 과하게 보태지 않는 게 정확해 보이긴 하네요.

나만의 문체를 찾는 법
이렇듯 번역은 수많은 후보 중 하나를 선택한다는 뜻입니다. ‘엄마가 죽었다’라는 문장만이 ‘My mother died’라는 상황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생각과 글 사이에 틈으 만들어내야 한다는 뜻입니다.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그대로 받아 적지 ‘말아야’합니다. 도리어 틈을 더 많이 벌려야 합니다. 특히 머릿속에서 떠오른 생각은 일상의 경험과 직접 연결돼 있습니다. 경험과 직접 연결된 말, 머릿속에 가장 빠르고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말, 이게 글쓰기의 독입니다. 경험과 연결된 언어는 생활언어에 속합니다. 절경을 보고 ‘와, 멋지다’, 우리한 사람을 만났을 때 ‘열 받네’, 벽에 머리를 부딪혔을 때 ‘아, 아파라’, 피곤할 때 ‘아, 졸려’ 이런 것들이죠. 그게 경험을 가장 잘 나타내는 현실적 감각이긴 합니다. 하지만 그 감각은 언어라기보다는 감정에 가깝습니다.

생각과 글은 일대일의 관계가 아닙니다
. 경험과 글도 일대일 관계가 아닙니다. ‘I don’t know myself’라는 생각이 떠올랐다고 해서 곧바로 ‘나는 나 자신을 잘 모르겠다’라고 쓰고 만족해하는 게 아니라, 멈칫하고 이를 어떤 ‘문장’으로 ‘번역’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그게 나만의 문체를 고민하는 사람의 태도입니다. ‘나는 내가 낯설다’ ‘나는 내가 그립다’ ‘내 속엔 수많은 타인이 앉아 있다’ ‘내 속엔 내가 너무 많아’ 따위의 문장을 떠올려야 자기만의 문체가 마련됩니다.

글을 여러 번 썼는데도 나만의 문체를 찾기 어려운 것은 매번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곧바로 썼기 때문 아닐까요. 멈춰서야 합니다. 자신의 경험을 ‘번역하는 마음’으로, 다시 말해 ‘낯선 언어’로 바꾸려는 자세로 쓰지 않으면 나만의 문체를 찾기 어렵습니다.
문체에 대한 감각은 말에 대한 감각입니다. 말을 외국어처럼 쓰려고 해야 합니다. 술술 나오는 걸 과신하지 말고, 머뭇거리거나 더듬거리며 어렵게 나오는 말을 더 신뢰해야 합니다. 미처 나오지 않은 말을 갈망해야 합니다.
다행히(!) 생각에 비해 글은 느립니다. 되돌릴 수도 있습니다. 지우고 고치고 다시 쓸 수 있죠.

내 감정은 남의 일처럼
간결함이란 군더더기를 덜어낸다는 뜻인데 무조건 문장을 짧게 쓰라는 뜻은 아닙니다. 간결함은 감정을 조절하는 문제에 가깝습니다. 자신의 글에 기쁨이나 슬픔의 감정을 지나치게 담으려 하면 간결함을 잃을 수 있습니다. 슬플 때 너무 슬퍼하지 않고, 기쁠 때 너무 기뻐하지 않는 것. 너무 들뜨거나 가라앉지 않는 것. 어쩌면 간결함은 무시함에 가깝습니다. 내 감정을 마치 남의 일처럼 무심하게 적어 내려가는 것. 그럴 때 글이 갖춰야 할 최고의 덕목인 ‘명료함’에 이를 수 있습니다. 명료함은 글에 생각이 뚜렷하고 분명하게 드러날 때 느낄 수 있습니다. 문체를 현대적으로 정의하면 ‘적절성, 명료성, 미학성 등을 통해 드러나는 작가의 독특한 표현 양식’입니다. 여기에도 명료함이 거론되는 군요.

글을 쓰다 보면 감정이 덜 드러나기보다는 과잉되게 담기는 일이 잦습니다. 감정에 격동이 생겼으니 기억에도 남고 글을 쓰겠다는 마음도 생겼겠죠.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웃긴 얘기를 하면서 김새듯이, 문장에 감정이 과잉되게 드러나면 그 마음이 전달되기 어렵습니다. 독자 리아 님이 쓰신 문장으로 예를 하나 들어보죠.

천근같이 무거운 발을 질질 끌고 나와 간신히 식탁 의자에 앉아서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아들의 합격 여부가 발표되는 날 아침의 심란하고 불안한 상황을 묘사한 문장입니다. 직접 감정을 드러내지도 않아 보입니다. 그런데 심란한 상황과 심란한 문장은 다릅니다. 마음이 심란하다고 문장마저 심란해서 곤란합니다. ‘천근같이 무거운 발, 질질 끌고 나와, 간신히, 멍하니’ 같은 표현은 자신들의 불안한 심리를 걸러내지 않고 드러내는 표현입니다. 문장이 심란해졌죠. 이런 걸 덜어내면 어떨까요.

무거운 발로 식탁 의자에 앉아 허공을 바라보았다.

수식을 과하게 하지 않고 ‘허공을 바라보았다’라고만 해도 불안한 마음이 전달됩니다. 글쓴이는 자신이 쓸 수 있는 만큼만 간결하게 쓰되, 나머지는 독자에게 맡겨야 합니다. 독자도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자기 감정과 경험을 독자 머릿속에 고스란히 욱여넣으려 하지 않아도 됩니다. 군더더기를 붙일수록 독자는 지치고 상황은 전달되지 않습니다.

간결한 마음이 명확한 문장을 만든다
이런 자세로 문장을 쓰다보면 결과적으로 문장이 짧아집니다. 묘하게도 문장은 짧을수록 힘이 생깁니다. 그러니 ‘간결하게 쓰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좋은 습관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간결하게 쓰려는 마음을 갖추면, 길어도 생각이 명확히 담기는 문장을 쓸 수 있습니다.
우스갯소리로 헤어hair가 있어야 헤어스타일도 있습니다. 머리카락이 없는데 머리모양을 갖추기는 어렵습니다. 옷장에 옷이 몇 벌 걸려 있어야 상황에 맞게 멋을 부릴 수 있죠. 어느 정도 글이 쌓여야 자기 문체를 찾아갈 수 있습니다.‘나는 어떤 문체를 갖고 있는가?’라고 묻기 위해서는 ‘자기 글’이라는 옷을 여러 벌 쌓아놓아야 합니다.
―김진해, 『쓰는 몸으로 살기』, 한겨레출판, 2025. 

                        *** 박수호시 창작 카페에서 공유함 *** 

 

  • profile
    들국화 2026.04.26 22:19
    시 한 편 짖는 것도 이론적 법이 있다.
    매번 같은 문구를 통해 글로 그림을 그리는 일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봄이 오면 매년 그 자리
    그 색깔 그 모양으로 피지만 시인의 눈에는
    매번 다르게 보기를 해야 한다.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9 세상을 고치는 데 돈이 꼭 필요한 건 아닙니다 1 들국화 2025.11.20 308
18 빈집 / 김무하 빈집 시인은 빈집도 이렇게 멋있게 꾸며놓는다 ^^ 1 들국화 2025.12.18 325
17 마음(글의 품격)/이기주 들국화 2025.12.24 224
16 여백(글의품격)/ 이기주 들국화 2026.01.13 77
15 퇴고(글의 품격)/이기주 들국화 2026.01.19 115
14 제목 / 독자가 가장 먼저 읽는 글 들국화 2026.01.19 48
13 결말, 매듭을 지어 마무리하다 들국화 2026.01.19 58
12 나잇값 / 최일화 들국화 2026.02.11 67
11 생명의 기지개 / 임한섭 목사 시 생명의 기지개 / 임한섭 목사 입춘이 문을 열고 우수가 다녀가니 대지의 숨결이 풀린다 땅 낮은 파란 봄까치꽃 가지 끝 붉은 홍매화 처마를 스치는 제비의 날갯짓... 1 들국화 2026.02.25 116
10 옛집에 걸린 달 / 성봉수 옛집에 걸린 달 / 성봉수 이 작품은 소새 시동인 단톡에서 공유했는데 소새 시 동인 총무인 황상희 시인이 서울 일 보러 갔다가 찍어온 것을 시가 좋아 공유했다.... 1 들국화 2026.04.05 39
9 이정록 시인의 의자 의자 / 이정록 시 [서울미디어뉴스]의 김상진 기자님이 <의자>라는 시를 따스하게 읽어주셨습니다. 꽃들이 의자에 앉아 오손도손 이야기할 때마다 봄향기가 퍼집... 1 들국화 2026.04.05 78
» 경험을 낯설게 번역하기(쓰는 몸으로 살기)/김진해 1 들국화 2026.04.26 55
7 주제는 선명하지 않을수록 좋다 1 들국화 2026.04.30 72
6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던 무렵, / 한성호 1 들국화 2026.05.14 42
5 무엇을 사랑했는가 / 박영봉 무엇을 사랑했는가 / 박영봉 시는 투명한 거울 하나를 들고 우리 앞에 조용히 다가옵니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묻습니다. “당신은 살아오는 동안 무엇을 그토록... 들국화 2026.05.27 49
4 어느 황혼 / 淸虛 어느 황혼 / 淸虛 바깥마당 떨어진 감나무 잎이 소리 없이 구르고 쉬파리 몇 마리 휘적이는 꼬리 사이를 맴돈다 썰다 만 쇠꼴은 이미 잊힌 것처럼 작두 끝에 걸려... 들국화 2026.06.18 61
3 너와집 한 채/김명인 1 들국화 2026.07.19 106
2 대이작도에서 / 이은춘 시화 대이작도에서 / 이은춘 시화 이은춘 시인은 인천지역대 국어국문학과 후배이고 가치불, 시 창작 문학회 활동을 함께 활동했던 후배이다. 1 new 들국화 2026.10.05 2
1 산문을 나설 때 / 淸虛김동수 산문을 나설 때 / 淸虛김동수 모락산 능선 소나무 사이 빨간 시월이 머리 끝을 밀어올리고 소나무는 가지 끝에 묻은 구월을 놓지 못한다 태양이 동그랗게 몸집을 ... new 들국화 2026.10.05 1
Board Pagination Prev 1 ... 5 6 7 8 9 10 Next
/ 10
위로